'이방' 강종구. 이 별 것도 아닌, 촛불 아래 작대기 하나가 그어진 계급장을 어깨에 달기만을 바라 마지않았던 2개월의 훈련기간이 있었다. 사격이나 각개전투 따위를 하며 한 달간을 논산 흙바닥에서 비비적대다가, 남은 한 달간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천안 하늘 아래서 악과 깡으로 버티고 이기면서 '최정예'로 거듭나기 위해 끙끙대었다. 하루가 끝나고, 하소연할 곳 없는 심신의 고통을 숨 쉴 틈도 없이 적어내려가면 깨알같은 글자들로 '훈련병 수첩' 한 장이 빈틈없이 꽉 차곤 했을 정도로 길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달고 싶었던 '강 이방'의 견장은 어느새 3개월이 지나 꼬질꼬질해졌고, 이제 엿새 후면 첫 번째 작대기 아래 또 하나의 작대기가 수놓이게 된다. 10월 1일, 예상보다 한 달 이른 진급이다. '이방'에서 '일방'으로의 이번 진급은 이른 만큼 벅차다. '이방 강종구'는 경기도 이천소방서에서 무엇을 해왔는가? 사나흘 간격으로 24시간씩 총 200여건의 구급출동을 했고, 각종 사역에 수시로 동원되었으며 청소, 빨래, 식당보조 등을 매일같이 했다. 책을 열댓 권 읽었고 외박을 두 번 나갔다 왔으며 미루고 미루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이제 막 시작했다. 그뿐이다.

소방서 생활에 적응해감에 따라 생활이 단조로워지는 딱 그만큼씩 시간은 빨라지고 있다. 팔자 좋게 앉아서, 국민의 혈세로 구입한 백여 권의 책 중 황석영 씨의 신간 『개밥바라기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강 이방은, 마지막 장을 넘기고는 고개를 떨구고 만다.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 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각주:1]
오후 다섯 시 이십 분, 청소가 시작되고 또 하루가, 가아아아안다.
  1.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p.2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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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종구

삶은 퀴즈쇼

Review 2008/08/24 14:52
퀴즈쇼퀴즈쇼 - 10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최여사가 돌아가시고 난 후, 이상하게 뭐든 되묻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밤이요? 창문이요? 복리요? 뭐 이런 식이다. 세상에는 되물을 것들 투성이였다. 어떤 세계에 들어가 그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게 된다는 뜻이었고, 무슨 말을 들어도 다시 되묻지 않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체로는 몰라서 되묻지만 알면서 되물을 때도 있다. 그것은 힘없는 어린 남자가 세상에 맞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보타주였다.”[각주:1]
『퀴즈쇼』의 주인공인 이민수의 첫인상은 잇따라 겪게 된 상실 때문인지 다소 염세적이다. 일순간에 하나뿐인 혈연인 외할머니(최여사)와 여자친구, 그리고 집까지 모두 잃고 빈 몸으로 세상에 던져진 이후 민수의 ‘세계’는 연남동 집에서 노트북 모니터 속 ‘퀴즈방’으로 좁혀진다. 좌절과 슬픔뿐이었던 그의 삶은 그러나 퀴즈의 세계로 들어선 이후 변하게 된다. ‘퀴즈방’에서 ‘벽 속의 요정’(서지원)을 만나 그간의 삶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진정한 교감을 나누는 ‘소울 메이트’가 된 것이다. 그 이후 TV 퀴즈쇼로, 그리고 ‘회사’로 이어지는 ‘퀴즈쇼’로부터 그는 삶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을 건네받는다.

[이어지는 내용]

jonggukang.com2008-08-24T05:52:260.31010
  1. 김영하, 『퀴즈쇼』 p.96 [본문으로]
  2. 김영하, 『퀴즈쇼』 pp.168~16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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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종구

시한부 백수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하였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그동안 발을 담갔던 여러 가지 대외 활동에 정리하는 마음으로 총력을 기울였다. 호텔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너댓 번 했고 텔레비전 심야 토론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 나가보았다. 하나같이 고되었지만, 심심풀이로 나간 것치고는 꽤 값진 경험이 되었다. 그동안의 기록들을 틈틈이 이 블로그로 다듬어 옮기는 작업을 하였다. 열 몇 살일 때의 기록들을 차근차근 읽어보니 내면의 엉성한 고민은 이 정도 털어놓았으면 됐다 싶다. 무엇을 보고 들은 후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하든, 이제는 자신에게 비추어 뒤돌아보기보다는 앞을 내다보는 자세를 취해야 함 또한 이 기회를 통해 느꼈다.

학교에서 벗어나 삶에 나 자신을 온전히 투영하고자 살았던 동안, 앎과 함 그리고 삶에까지 배어있던 그릇된 강박관념을 벗어던지려고 부단히 발버둥쳤다. 욕심만큼 되지 않았던 지식의 확장에도 이제는 용기가 생긴다. 동시에 나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했던 ‘관계에의 집착’을 버리고 확신할 수 없었던 피폐한 인간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혹은 상대방이 서로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면 어떻게든 이어지게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욕심 없이 그저 받아들이겠다. 그것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져 있는 수많은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며, 또한 그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알고 있었음에도 쉬이 버리지 못했던 강박관념이나 집착, 소유욕 따위를 나에게서 비워가면서, 욕심내지 않으면 모든 것은 나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옴을 느꼈다. 무료함은 종종 사람을 폐쇄적으로 만들곤 했지만, 텅텅 빈 채로 지나갔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의지에 대한 확신을 찾았다. 그동안 나를 자의식 속에 갇혀 있게 했던, 자신에의 불신에서 비롯한 불안은 완전히 떨쳐버릴 태세이다. 삶이라는 거울에 얼기설기 쌓아올린 거짓 페르소나가 더 이상은 비치지 않도록 진심을 다하여 살게 될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알껍데기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음을 느낀다. 주변으로부터 잊혀갈 나의 존재에 대한 연민이나 굳어갈 자의식에 대한 두려움은 그간의 고민 끝에 비로소 무색하다. 하나의 단락에 마침표를 찍고 새 단락을 시작할 때에 첫 칸을 비우듯, 지식과 교양의 부족에서 오는 허기짐을 채우며 앞으로의 2년을 '새 단락의 첫 칸'으로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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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