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i Manera

May 17

전역 후 所懷

개구리 마크 하나만 휑하니 달린 말쑥한 군복이 도저히 쑥스러워, 출타 때마다 입던 다 늘어진 근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이 역사적인 날에도 예외 없이 바삐 돌아가는 소방서의 하루만큼 성급하고 간결했던 전역신고, 어쩌면 지난 2년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상상하기엔 마냥 기뻐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았다. 소방서가 나에게 어느새 ‘탈출해야 할 곳’이 되어 있었나 보다. 좋았건 나빴건, 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다는 증명일 것이다.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과연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는가?

스무 살에 맞닥뜨린 삶의 기로에서 태어나 처음 스스로 한 선택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살아내고 싶었다. 공부밖에 몰랐던 모범생답게, 책상머리에 앉아 끙끙대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면해있는 생활을 외면해가며 자기계발에만 몰두하는 삶은 공부에의 의무감과 업무 스트레스가 두서없이 뒤엉켜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본말전도를 타파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군인이자 구급대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나의 자세는 치열함이라기보다 젖어듦이었다. 견문을 넘어선 체험이길 바랐기에 자기계발만큼이나 출동업무에 열심이었다. 출동벨이 취명되고 구급차로 뛰어가는 순간, 나를 군대로 도피하게 하였던 수많은 고민들과의 정면 승부가 시작되었다. 출동을 거듭할수록 넓어지는 날것 그대로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때, 그 충격이 새로운 계기이자 영감이 되어 매 순간 나를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한 인간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군용 더플백을 메고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얻은 게 많아서인지 그저 허비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후회는 없다. 살아보면 차차 알겠지…….

Jan 07

오, 해피 데이

각종 공부거리들이 욕심껏 널부러져있던 책상 위를 모처럼 정리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 고조될수록 충실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공부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졸렬한 소유욕과 정복욕에서 비롯한다는 증명이다. 행복에의 그릇된 욕망이 불러오는 일상적 오해를 푸는 데 시의적절한 통찰력은, 오쿠다 히데오를 펼칠 때마다 스스로를 정돈하게 하는 마법같은 힘이다.

Dec 11

역사의 반복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다.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약 80여 년 앞선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술은 유럽 민중 문화의 기층부에 계몽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앞선 기술의 활용이 불교 경전이나 국가사업에 국한되었던 고려 시대의 모습과 사뭇 비교된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iPhone이 국내에 출시된지 열흘만에 판매량 10만대를 돌파하며 국내 이동통신 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옴니아2’는 상대적으로 뛰어난 하드웨어 성능을 가졌음에도 iPhone 열풍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이폰·블랙베리 뜯어보니 ‘메이드 인 삼성’이라지만 죽 쒀서 개 준 셈이니 마냥 뿌듯해할 결과는 아니다.

앨 고어는 “전 세계가 인쇄술에 이어 한국으로부터 두 번째 혜택을 보게 되는 것”라고 답보하는 우리의 현실을 비꼬았다. 이는 비단 선진 첨단 기술에만 유효한 일침이 아니다. 평균지능지수 세계 2위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입시 경쟁에 낭비하는 제도권 교육은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도 여전히 뒤떨어지는 인터넷 윤리는 어떤가? 역사는 역사에 대한 무지로부터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