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한국사를 공부하며, 우리나라의 역사관은 ‘민족’과 ‘자주’라는 화두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직은 역사에 문외한인지라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가질 수 있는 주관성이나 현재와의 관계성이 어느 정도 선까지 허용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사 공부를 시작하는 초심자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역사 서술의 타당성을 한 번쯤은 의심해볼 만하다. 특히 고구려사와 발해사 부분에서 맞닥뜨리는 ‘이 역사는 우리 것’이라는 강박관념은 어떻게 보면 열등감의 표현으로 비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한국인이 한국사를 이해함에 있어 민족주의와 애국심은 기본 준비물인가 싶어 불편하기도 하다.
특정 과거사의 소속국을 정하는 기준은 크게 ‘민족의 계승’과 ‘영토의 점유’,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전자의 경우는 무의미한 기준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역사 속에서 전쟁이나 공녀, 정략결혼 등으로 수없이 섞여왔거니와, 현대 사회의 구성원은 역사 이래 가장 경이적인 속도로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뒤섞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영토의 점유’를 기준으로 삼는 후자의 경우이다. 역사를 단순히 ‘그 장소에서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해보면 특정 과거사가 현존하는 국가에 소속되는 것의 모순이 분명히 느껴진다. 동북공정의 경우가 그렇다.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일 수도, 중국의 역사일 수도, 혹은 둘 다의 역사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즉 고구려는 고구려일 뿐 그 역사는 오늘날 어느 국가의 소유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동북공정에 반대하지만 그 이유는 ‘명백한 우리의 역사인 고구려를 빼앗기는 게 억울하고 분통해서’가 아니라, 특정 국가가 소유하거나 관리할 수 없는, 그저 존재할 뿐인 ‘역사’를 가지고 제 나라의 잇속에 이용하려는 대동강 물장수같은 심보가 괘씸해서이다.
민족주의나 애국심을 갖다 붙여 감정적으로 맞대응해서는 동북공정의 당위성을 입증하기도, 동시에 그 악의성을 반증하기도 어렵다. 역사 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하려면 뚝심 있는 철학이 필요하고, 그 감정적 기반은 소유욕이 아닌 탐구욕이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동북공정에는 ‘고구려사가 누구의 것인가’가 아니라 ’고구려사의 가치 중립적이고 사실적인 해석’으로 그 초점을 옮겨오는 방향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