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상 보길도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수평선이 어딘지 가늠이 안 될 만큼 맑은 땅끝마을의 날씨에 아쉬움이 어느 정도 풀린다. 새벽 벽두부터 땀을 뻘뻘 흘려가며 땅끝전망대에 올라 이번 여행을 되돌아본다.
여행 과정에 몸을 맡길수록 껍질을 까는 느낌이었다. 나도 이렇게 무모하고 홀가분하게 살 수 있었나, 감탄의 연속이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데미안』의 한 구절에 조금은 가까워졌나 싶다. 더불어, 항상 맺음을 망설이고 끊음에 미련갖는 나의 서투른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실마리 또한 얻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고 헤어지며, 부담없이 다가가는 법과 크게 미련갖지 않는 법을 익혔다.
여전한 치열함의 이면에 차분함이 자리잡은 느낌이다. 선 자리에서 넓게 둘러보고, 옳은 길인지는 몰라도 바른 걸음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이번 여행에서 얻었다. 다시금 솟아나는 자신감으로 이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